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4월 2일 경남 김해읍(金海邑) 김해장터에서 배동석(裵東奭)·임학찬(任學瓚)·송세희(宋世禧)·박덕수(朴德守) 등과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고, 이로 인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20년에는 김해청년회 결성에 참가하고, 1921년 조선청년회연합회 제2차 정기총회에서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1923년 8월 사상단체 북성회 국내 순회강연에 협력하였고, 같은 달 북성회와 서울청년회 간의 알력으로 빚어진 ‘장안여관사건’으로 검거되었다.
1925년 4월 조선공산당에 입당하여 당중앙 개편운동을 벌이다가 출당조치 당했다. 이후 그는 4단체(북풍회·화요회·조선노동당·무산자동맹회) 합동운동에 참여하며, 4단체합동위원회 대표로서 서울청년회 측과 교섭을 벌이며 민족협동전선운동에 투신하였다. 1926년 4월 정우회(政友會)가 결성된 후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다가 1927년 2월 용산경찰서, 8월 종로경찰서에 검거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東亞日報(1928. 2. 14)
- 每日申報(1920. 12. 2∼4)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권 478·48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215·216면, 제10권 994면
- 高等警察要史(慶尙北道警察部, 1934) 301·309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제3권 386면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 비평사, 1996) 2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