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남 마산(馬山) 사람이다.
1919년 3월 21일 마산군 마산읍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마산의 독립만세운동은 창신학교(昌信學校)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계통이 서울과 연결되면서 이루어졌다. 기독교 지도자였던 이승규(李承奎)는 1919년 2월 23일 서울에서 파견된 이갑성(李甲成)과 만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당시 기독교 장로이던 이상소는 창신학교 교사 임학찬(任學瓚)과 더불어 실질적인 일을 추진해 나갔다. 그는 임학찬 집에서 독립선언서를 받아 이형재에게 나누어주었다.
이상소 등은 장날인 3월 21일을 거사일로 정하였으며, 거사 당일 3천여 명의 군중이 동원되면서 만세운동은 불같이 일어났다. 이에 일본 경찰은 중포병 대대병(重砲兵 大隊兵)과 헌병을 동원하여 무력 진압을 자행하였고, 이상소 등 주동자 50여 명을 체포하였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미결기간 중 8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고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7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04∼123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235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3輯 121·125·126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