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경남 김해군(金海郡) 김해읍 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서울에서 학생 대표로 활약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학생 배동석(裵東奭)은 3.1운동 이후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 김해로 와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고자 하였다. 그는 임학찬(任學瓚),배덕수(裵德秀),송세희(宋世憘) 등을 동지로 규합하여 거사를 준비하였다. 30일 밤 10시경 임학찬을 비롯한 7명의 청년들은 김해읍내에서 만세를 일으켰으나, 주동 인물 몇 명이 체포되었다. 이때 체포를 면한 인물들은 4월 2일 김해읍 장날에 다시 거사를 일으키기로 하였다. 31일 허병(許炳)은 태극기 수십 개를 만들어 최계우에게 전해주면서 2일 만세시위 때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독립만세를 부르도록 유도할 것을 지시하였다. 또 이들은 1일 밤 각처에 격문을 붙이고 의용대도 조직하였다. 2일 오후 4시경 최계우는 4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이때 일본 군경은 일본 재향군인을 비롯하여 상인,불량배까지 총동원하여 시위대열로 뛰어들어 군중의 머리를 칼로 찌르고 갈고리로 얼굴을 찍는 등 무자비한 횡포를 가하며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 일로 체포된 최계우는 1919년 5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1222~1223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117면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19. 5.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