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경상남도 김해(金海)사람이다.
1919년 3월 31일의 하계면 진영리(下界面進永里)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이곳은 농산물의 집산지로 일찍이 식민지 경제정책의 수탈대상이 되어 왔으며, 이로 인하여 이곳 농민들의 항일의식은 어느곳 보다도 강하였다.
그는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고, 김성도(金成濤)·김우현(金禹鉉)·김용환(金容煥) 등과 함께 진영 장날인 3월 13일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각기 금전을 갹출하여 10척 장대에 매어 달 대형 태극기와 소형 태극기, 그리고 격문을 제작하였다.
3월 31일 오후 1시 그는 장터 근방의 흙다리에다 10척이나 되는 장대에 매어 단 대형 태극기를 세워두고, 시장에 모인 2천여명의 군중에게 태극기와 격문을 나누어주고, 그들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곧 출동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이해 5월 19일 대구(大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127·21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221·12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