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20일 경남 (慶南) 고성군 (固城郡) 구만면 (九萬面) 에서「나팔소리」를 신호삼아 시위군중이 국천 (菊川) 장터에 모여들자 등단하여 독립선언문를 낭독하고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 하며 회화면 (會華面) 배둔리 (背屯里) 장터로 향하여 행진하며 활동할 때 일 헌병 (日憲兵) 이 총으로 위협하였으나 중단하지 않고 700~800여명의 시위군중과 계속 시위하고 당일밤 무사귀가하였으나 일경 (日警) 의 시위주동자 색출시 피체 되었으며 군자금 모집에 관한 것이 탐지되어 징역3년을 받아 복역 하다가 옥중사 (獄中死) 순국 (殉國) 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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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경남 고성(固城) 사람이다.
1919년 3월 20일에 고성군 구만면(九萬面)에서 만세운동을 주동하였으며, 동년 3월 21일에는 고성읍에서 동지들과 함께 한인관리 퇴직권고문을 작성하여 각 군면에 발송하였다.
1920년 10월에는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서 밀파된 윤영백으로부터 군자금 모집지령을 받은 허재기와 같이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2월에 산청군(山淸郡)에서 일경에 체포되어 동년 4월 11일 부산지방법원 진주(晋州)지청에서 소위 제령 7호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고문의 여독으로 1922년 5월 3일 옥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고등경찰관계적록 16면
- 鐵城誌 卷之四 3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263·26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