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경상남도 남해(南海) 사람이다.
1919년 4월 2·4일에 걸쳐 남해읍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4월 2일 밤 남해군 설천면(雪川面) 문항리(文巷里) 거리에서 1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4월 4일에는 정순조(鄭順祚)·정학순(鄭學淳)·정용교(鄭鎔交)·윤주순(尹柱舜) 외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남해면 남해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시위군중은 군청·우체국·학교·주재소에 뛰어들어 관리들을 끌어내어 독립만세를 외치게 하고, 경찰간부의 모자와 대검을 빼앗아 내동댕이쳤다.
주재소의 경찰들이 어쩔 줄 몰라 하자, 고현면(古縣面) 면장 김치관은 다시 경찰 경비전화를 이용하여 사천(泗川)경찰서에 응원 요청을 하였다. 유찬숙은 이 사실을 모르고 날이 저물어 자진 해산하려 하다가, 김치관의 이같은 소행을 알고는 고현면 이어리(伊於里)에 있는 김치관의 집을 습격하여 파괴한 후 해산하였다. 그러나 그후 일제의 검속으로 체포되었으며, 이해 8월 7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2년형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9월 2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19. 9. 23 대구복심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275면
- 예심종결결정문(1919. 7. 15 부산지방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