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남 의령(宜寧) 사람이다.
1919년 3월 15일 의령군 부림면(富林面) 신반리(新反里)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장용환은 최정학(崔正學)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고, 정주성(鄭周成)·최한규(崔翰圭)·황상환(黃相煥) 등과 함께 이 지역의 만세운동에 대해 협의하였다. 그리고 장용환을 비롯한 주동자들은 주민을 규합하여 많은 동지를 포섭하였고, 비밀리에 태극기도 제작하였다.
그리하여 장용환을 비롯한 주동자들은 3월 15일 정오 의령읍 제2차 의거와 같은 때에 만세운동을 벌이기 위해 준비된 태극기를 품고 신반리 장터로 잠입하였다. 정오가 되자 많은 장꾼이 모여들었고, 장용환 등은 장터 복판에서 재빨리 태극기를 나누어 준 후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야만적인 탄압으로 시위군중은 해산되었다.
이때 주도인물 장용환을 비롯한 정주성과 최영렬(崔永烈)·박재선(朴載善)·박우백(朴又伯) 등이 붙잡혔다.
이날 시위로 장용환은 1919년 5월 26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312∼313面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別集 7輯 239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釜山·慶南三一運動史(三一同志會, 1979) 356∼357面
- 내고장 전통(의령군, 1985) 139·141面
-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