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남 하동(河東) 사람이다.
1919년 4월 7일 하동군 하동읍 하동공립보통학교(河東公立普通學校)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하동군 적량면장(赤良面長)인 박치화(朴致和)가 3월 14일 돌연 사표를 제출하고 만세시위를 계획하면서 추진되었다.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였던 박치화는 혼자 3월 18일 하동읍 장날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에 군중 수천 명이 호응하여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그리고 3월 23일에는 양포면(良浦面) 장암리(長岩里) 일진학교(日進學校) 교원 정섬기(鄭暹基)와 정성기(鄭成基) 등이 주도하여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렇듯 하동에서 연이어 만세시위가 전개되자, 4월 4일 경, 이에 고무된 박문화는 하동읍 하동공립보통학교 동교생인 염삼섭(廉三燮)·정점금(鄭點金)·전석순(全錫舜) 등을 교유하여 뜻을 같이 하기로 결의하고, 학교 기숙사에서 비밀 모임을 갖고 독립만세운동을 4월 7일 하동읍 장날에 단행하기로 맹약하고, 돈을 갹출하여 태극기 50여 매를 제작하였다.
거사 당일인 4월 7일 오전 11시 40분 경, 학생 약 130여 명은 태극기를 흔들면서 학교를 뛰쳐나와 하동읍 시장을 향하여 구보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많은 장꾼들이 이에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대규모 시위로 전개되려 하였으나, 긴급 출동한 일경에 의해 계획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였다.
그는 이 일로, 이해 5월 6일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를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277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