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남 합천(陜川) 사람이다.
1919년 초계면 상태리(草溪面 上台里)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곳은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교통이 불편하였지만 3·1독립운동의 감격적인 소식은 끊임없이 들려왔다.
그는 무릉리(武陵里)에 사는 유지 전하선(全夏善)·성만영(成萬永)·김덕명(金德明) 등과 주동이 되어 초계 장날을 거사일로 약정하고 동지를 규합하면서 모든 준비를 갖추어 갔다.
1919년 3월 21일 초계 장날, 이들은 준비된 선언서와 태극기를 숨겨 가지고 장터로 숨어 들어가 장꾼들에게 나누어 주고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때 모인 군중은 4천여명에 이르렀고 만세시위대는 장터를 누비면서 시위행진 하였다. 그는 군중이 우편소와 주재소를 습격, 파괴하는 등의 격렬한 시위를 벌일 때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8월 8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죄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329∼331面
- 犯罪人名簿(草溪面 發行, 1989. 5.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