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경남 동래(東萊) 사람이다.
기미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기 5년전인 1914년 항일지하조직인 기장광복회(機張光復會)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4월 5일 동래군 기장면(機張面)에서 김도엽(金度燁)·구수암(具壽岩)·장봉기(張琫起) 등과 같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주동자들은 혈서(血書)로 된 '양심발원(良心發源), 인도적 자유민족(人道的 自由民族)'의 큰 깃발을 장터 복판에 세운 후, 독립만세를 선창하고 100여명의 시위군중과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같은 해 5월 1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선고받아 공소를 제기하였으나, 6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중국 동삼성(東三省)으로 가서 국민학교장을 지냈다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19. 6. 11. 대구복심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199∼20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집 1207∼1210면
- 부산일보(1990. 5. 22)
- 3·1운동실록(이용락) 600·60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