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전남 함평(咸平) 사람이다.
그는 1919년 4월 8일 전남 함평군 월야면(月也面) 문장(文場) 장터에서 김기택(金箕澤)·정용섭(鄭龍燮) 등과 함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함평의 만세운동은 인근의 다른 지역보다 늦은 3월 26일부터 시작되었다. 이날 읍내에서 시작된 만세시위는 이후 4월 1일의 학교면(鶴橋面), 4월 2일의 나산면(羅山面) 등지를 비롯하여 각 면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재남은 서당 출신의 동지들인 김기택·정용섭 등과 함께 월야면의 만세시위를 추진해 갔다. 이들은 4월 8일 문장 장날을 기해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을 세우고, 거사에 필요한 준비를 진행시켰다.
그리하여 거사 당일 오후 5시를 기해 정재남 등은 미리 준비해 온 태극기와 선언서를 장터에서 배포하면서 수백여 명 군중을 이끌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런데 이들은 만세시위를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일경에 의해 현장에서 심한 구타를 당하고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이 일로 1919년 5월 24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경찰청)
- 형사사건부
- 함평군사(함평군사편찬위원회, 1984) 47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604면
- 함평군지(함평군지편찬위원회, 1969) 122면
- 내고장 전통가꾸기(함평군 내고장전통가꾸기편찬위원회, 1981) 7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