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남 함평(咸平) 사람이다.
1919년 함평군의 만세운동은 뒤늦은 3월 26일 읍내에서부터 일어나기 시작하여 각 면·리로 번져갔다.
1919년 4월 8일 그는 함평군 월야면(月也面) 장터에서 정용섭(鄭龍燮)·정재남(鄭在南) 등과 함께 주동이 되어 장날을 이용하여, 장터로 나온 수백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준 후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거리를 돌며 만세시위행진을 벌였다.
그는 이 시위의 주동자로 일제 헌병에게 구타를 당하며 이날 5시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5월 20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 받았고 6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6. 30 大邱覆審法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603·604面
- 刑事事件簿(光州地方法院 木浦支廳 檢査分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