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기도 부천(富川) 사람이다.
부천군 계양면 이화리(桂陽面 梨花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 지역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일찍부터 조국독립을 희망하고 있던 중 3·1독립운동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자 그 취지에 적극 찬동하여 심혁성(沈爀誠)·임성춘(林聖春) 등과 함께 1919년 3월 24일 오후 2시경 장기리(場基里) 장터에서 300여명의 시위군중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대열을 선도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10월 2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아 1년 2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10. 29. 京城地方法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316∼322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