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인천(仁川) 사람이다.
1919년 3월 인천공립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 중 동급생들과 함께 동맹휴학을 벌이던 김명진은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교내에서 일경의 사주를 받은 교원들에 대항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인천공립보통학교 맹휴가 일어나자 일경은 학교 교원을 통하여 동맹휴교 중인 학생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김명진 등은 교원들로부터 심한 감시와 통제를 받는 고통을 당하였다.
이 과정에서 김명진은 교원들의 감시와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통신망을 절단할 계획을 세우고, 동급생 이만용(李萬用)·박철준(朴喆俊) 등과 함께 행동대를 조직하고 통신망 절단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그리하여 3월 8일 오후 9시경, 김명진·박철준은 인천공립보통학교 내에 몰래 들어가 전선 절단용 가위로 전화선을 절단하고, 사무실 전화기를 부숴 외부와의 통신을 절단하는데 성공하였다.
나아가 조직적인 동맹휴학을 계획하던 중, 지난 일이 발각되면서 김명준은 일경에 붙잡히고 말았다.
이 일로 그는 1919년 6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전신법·절도 등으로 징역 2년을 받았으나, 공소하여 같은 해 7월 25일 경성복십범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309∼311面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別集 第1輯 567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9卷 217·218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