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 3월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군중들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종로방면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으며 동년 4월에는 비밀리에 『독립신문』을 제작 배포하여 만세시위의 전개상황 등을 전파하고 임시정부 (臨時政府) 수립을 위한 국민대회 (國民大會) 개최를 준비하는 등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을 받았으며 1924년에는 조선청년총동맹 (朝鮮靑年總同盟) 의 결성에 참여하여 규약 (規約) 기초위원 (起草委員) 으로 선임되었고 소위 출판법 위반으로 체포된 바가 있으며, 1924년 10월 서울청년회계의 조선공산당 (朝鮮共産黨) 결성에 참여하여 교양부 책임을 맡아 활동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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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그는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열린 독립만세선언식에 참가한 뒤, 군중들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종로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동년 4월에는 만세시위 상황을 널리 알리기 위해 비밀리에『독립신문』을 제작 배포했으며,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대회(國民大會) 개최를 준비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4년에는 조선청년총동맹(朝鮮靑年總同盟) 결성에 참여하여 규약기초위원(規約起草委員)으로 활동하였고, 1924년 10월 서울파 사회주의 조직인 고려공산동맹(高麗共産同盟) 결성에 참가하여 교양부 책임을 맡았다. 1927년에는 고향인 북청(北靑)에서 신간회(新幹會) 지회를 만드는데 앞장서 임시의장으로 활약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1920. 10. 28)
- 朝鮮日報(1927. 7. 7)
- 東亞日報(1927. 7. 8)
- 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4권 141·14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0권 114·1012면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 비평사, 1996) 105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국사편찬위원회) 별집 제2권 39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권 78∼81·132∼144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권 116∼1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