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경기도 강화(江華) 사람이다.
1919년 3월 9일 강화군 길상면(吉祥面) 온수리(溫水里) 교회당에서 서울에서의 3·1독립만세시위 상황에 관하여 연설하고 "강화도에서만 있을 것이 아니다"라고 하여 주민들을 고무하였는바, 3월 19일 읍내시장에서 독립만세시위가 벌어지게끔 하는 직접적인 자극을 주었다.
1919년 5월말에 서울에서 비밀결사 대동단(大同團)의 단원 유경근(劉景根)을 만나 시국문제에 관한 대담을 하던 중, 노령(露領)에서 이동휘(李東輝)가 독립군 장병을 모집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음과 아울러 그에 대한 협조 요청을 받고서 6월 15일경 노준(魯駿) 외 2명의 노령행 지망자를 유경근에게 소개하여 그들이 국외로 탈출할 수 있게 해 주었다.
1919년 11월 대동단 조직이 일경에 포착됨으로써 다수 단원에 대한 검거 선풍이 불어닥쳤을 때 붙잡힌 그는 1920년 12월 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정치범죄처벌령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12. 7 京城地方法院)
- 東亞日報(1920. 4. 1, 1921. 3. 24)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338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