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1919년 3월 중순 강화군(江華郡) 부내면(府內面)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강화의 3.1운동은 기독교 신자인 유봉진(劉鳳鎭)이 연희전문학교 학생 황도문(黃道文)으로부터 서울의 시위소식과 독립선언서를 접하고 착수되었다. 유봉진과 황도문은 3월 18일 읍내의 장날에 거사하기로 하고 <강화군민에게>라는 문서를 배포하여 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3월 18일 오후 2시부터 유봉진 등이 이끄는 1만여 명의 군민들은 부내면(府內面) 읍내 시장과 향교 및 군청 앞에서 독립연설회를 개최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오후 5시 경부터는 경찰서 앞에서 억류자의 석방을 요구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장흥환은 유봉진의 독립만세운동 참여 권유를 받아들여 준비자금을 기부하고, 1만여 명의 시위대와 강화군청과 강화경찰서 등지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는 한편, 강화경찰서에 수감자의 석방을 강력히 요청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장흥환은 1919년 12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受刑人名簿(京城地方法院)
- 매일신보(1919. 12. 20)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제26권 246~248, 258~259, 294~295면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19. 12. 18)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336~33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