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충청북도 괴산(槐山) 사람이다.
1919년 3월 30일 김수백(金壽伯)·이태갑(李泰甲)·장성원(張聖源)과 함께 청안면(淸安面) 읍내 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거사하기로 결의하고, 장터에 모인 시위군중 3천여명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주동자들이 청안 경찰주재소로 연행되자, 그는 선두에 서서 격분한 시위군중을 이끌고 주재소로 달려가 투석으로 대항하며 연금자 석방운동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말미암아 군중들은 해산되었으며, 그는 주모자로 체포되어 그해 10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2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곳의 시위는 일경의 발포 이후에도 김수백·장성원·함재원(咸在源)이 주동이 되어 군중 200여명과 함께 부근의 우편소를 습격하였으며, 특히 청안면 독립만세운동은 3천명 이상 참가하였고, 사망자 6명, 부상자 2명을 발생케 하는 등 매우 격렬한 시위운동이었다. 충주에서 급파된 일본 경찰의 무력적 탄압으로 이곳의 시위는 겨우 중단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7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60·1071·1072·107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5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