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부산(釜山)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와 좌천동(左川洞)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3일경 기독교 계통의 인사들을 통하여 독립선언서가 부산,마산에 비밀리에 배부되었다. 또 이때 서울로부터 학생 대표가 내려와 경성학생단(京城學生團) 이름으로 부산상업학교,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 대표들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고 만세운동을 권유하였다. 이에 따라 일신여학교를 비롯한 각급 학교에서는 거사를 준비하였다. 이때 일신여학교에서는 이명시가 연락을 담당하였다. 3월 11일 새벽 일신여학교 기숙사 주변을 비롯한 각처에는 격문이 뿌려졌으며, 3월 11일 오후 9시 이명시를 비롯한 고등과 학생 11명은 교사 주경애,박시연과 더불어 태극기를 손에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때 일본 군경이 대거 출동하여 여학생 전원과 여교사 2명을 붙잡아 부산진(釜山鎭) 주재소로 넘겼다.
이때 체포된 이명시는 1919년 4월 28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고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권 179~180면, 제9권 25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