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9년 3월 부산 좌천동(左川洞)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 재학 중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3월 2~3일경 독립선언서가 부산에 전해지자 일신여학교 교사 주경애(朱敬愛)는 부산상업학교 학생들과 연락을 취하는 한편, 뜻을 같이할 동료 교사를 모으고, 고등과 학생들에게 거사를 독려하였다. 이에 김봉애는 김난줄(金蘭茁)ㆍ김응수(金應守)ㆍ송명진(宋明進) 등 고등과 학생 10명과 기숙사에서 태극기 50개를 만들었다.
3월 31일 이들은 준비한 태극기를 손에 들고 교사 주경애ㆍ박시연(朴時淵)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기숙사 문을 뛰쳐나왔다. 여학생들이 좌천동 거리를 누비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자, 군중 수백 명이 호응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로 체포된 김봉애는 1919년 4월 28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고,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名籍表
- 每日申報(1919. 4. 7, 4. 19)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7) 제13집 88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179~18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