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 사건으로 한민족의 애국심은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서울 한성학원(漢城學院)에서 수학하던 그는 1905년 5월 노동이민으로 하와이로 건너갔으며 이어 1906년 6월 도미(渡美)하여 철도노동자·알래스카어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미주 독립운동 단체인 공립협회의 회원이 되어 주로 청년회에서 활약하였다. 1908년 3월 당시 대한제국 외교고문 미국인 스티븐스가 도착후 기자회견에서, 일본제국주의의 한국통치를 잘된 일이며, 일제의 통치만이 한국을 발전시킨다는 간악한 거짓 내용의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미국내의 독립운동단체인 공립협회(公立協會)와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 회원들은 크게 분노하여 먼저 대표자를 선출하여 스티븐스에게 보내 그의 망언을 취소하도록 요구키로 하였다. 그러나 이들 대표의 요구가 묵살되자 공립협회와 대동보국회에서는 스티븐스 처단방법을 논의하였으며, 이때 그가 자원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이튿날인 1908년 3월 23일 오전 9시 30분경 스티븐스가 워싱턴으로 가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주재 일본영사(領事) 소지(小池)의 안내를 받으며 페리선창에 도착하자 권총을 발사하였으나 탄환이 발사되지 않자 권총을 든 채로 스티븐스에게 돌진하여 권총으로 가격하면서 발악을 하는 스티븐스와 격투를 벌였다. 이때 장인환이 총탄 세발을 발사하여 두발은 스티븐스의 가슴과 다리에, 나머지 한발은 그의 어깨에 맞았다. 그와 중상을 입은 스티븐스는 미국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으며 장인환은 붙잡혀 구속되었다. 그는 병원에서 스티븐스를 습격한 이유를 묻는 미국 경찰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일본이 러시아와 싸우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독립을 확실히 한다고 선언하였는데 지금 와서는 우리 국권을 빼앗고, 우리 재정을 흡수하고, 우리 관직을 차지하며, 헌병 순사가 전국에 가득찼다. 그러므로 내가 미국에 와서 학업을 닦아 국가에 헌신하려던 것인데 지금 스티븐스가 각처에 통신하여 말하기를 '한국인이 일본인을 환영하고 일본인에게 감복한다'고 하니 이것은 속이고 업신여기기도 심한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이 도적을 죽이려 한 것이다" 그의 이와같은 거사 동기는 미국의 각 신문에 보도되어 미국 내의 동포들은 물론이고 미국인들까지 그의 애국심에 감탄하였다. 그는 병원에서 퇴원한 후 미국 경찰에 수감되어 심문을 받다가 같은해 7월 교포들의 주선으로 보석·석방되었다. 그후 그는 9월 러시아 연해주(沿海州)로 건너가 그곳 독립운동단체인 동의회(同義會)에 가입하여 활약하다가,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서 의용군(義勇軍)을 조직, 군자금을 모집하여 상해(上海)임시정부에 보내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2권 39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770면
- 한국독립운동사자료(국사편찬위원회) 제6집 57면
- 고등경찰요사 5면
- 기려수필 86-89면
- 매천야록 449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11·12면
- 박은식전서상권 340·341·474·475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69·410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5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193·196-200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30·31·248-431·510·57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12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19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20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