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경북 경산(慶山) 사람이다. 대구 사범학교 재학중인 1940년 12월 1일에 동교생 조소영(趙宵影)·김병욱(金炳旭) 등과 함께 대구시 대봉동 소재 우전화정(宇田和正, 창씨명)의 하숙방에 모여 항일결사 무우원(無憂園)을 조직하였다. 동결사는 민족의식을 고양할 목적으로 조선문학의 연구를 통한 문화향상 및 경제적 성장에 힘을 쏟았는데 겉으로는 종교단체 내지는 저축장려단체로 가장하였다. 조직의 구성은 집행장 아래 문예·종교·경제·총무부 등의 7부를 두었는데 그는 총무부장으로 활약하였다. 이들은 동지포섭에 노력하여 조직의 확대를 꾀하는 한편 〈무우원〉이라는 기관지를 발행하고, 또 항일내용을 담은 인쇄물을 발간하면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렇듯 무우원의 주요간부로 활동하였던 그는 1941년에 동교를 졸업한 후 경산군의 진량국민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동단의 사업을 계속 수행하였다. 그러던 중 동결사의 활동이 발각됨으로써 그는 1943년 6월에 일경에 붙잡혔다. 붙잡힌 후 그는 1944년 6월 16일에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8·15광복으로 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44. 6. 16 대구지방법원)
- 출소증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