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대구(大邱) 사람이다. 1919년 3월 8일의 대구 서문(西門) 장날을 이용하여 김태련(金兌鍊)·권의윤(權義允)·이만집(李萬集)·김영서(金永瑞) 등이 주동하여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그는 이날 오후 3시경부터 계성중학교·대구고등보통학교(大邱高等普通學校)·성경학교(聖經學校) 학생들과 일반주민 등 1천여 군중과 함께 연합시위를 일으켰다. 그러나 시위군중이 경찰서 앞의 제지선을 뚫고 중앙파출소 앞을 돌아 달성군청(達城郡廳)앞 삼각지에 이르렀을 때, 6대의 기관총으로 무장하여 대기중이던 일본군 80연대와 대치하게 되어 부득이 행진을 정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일본군 헌병과 경찰은 시위대열로 뛰어들어 닥치는 대로 시위군중을 구타하며 검거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그는 서문 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등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해 온 아버지(김태련)가 일본 군경에게 구타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일군경에게 대항하였다. 그러나 일본 군경들이 그를 하수구에 처박고 잔인하게 짓밟아 빈사상태가 되었으며, 결국 체포되어 수감당했다. 유치장에 수감된 후 혹독하고 잔인한 고문을 받다가 3월 29일 풀려났으나, 고문의 후유증으로 4월 13일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58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10·12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35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