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 6월
1923. 6월
1944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서울 종로(鍾路) 사람이다.
일찍이 부친의 가르침 속에서 한문을 공부한 그는 40세가 되던 해에 일제에게 나라를 강점 당하는 경술국치(庚戌國恥)의 비운을 맞게 되자 독립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그는 서울에서 시위에 앞장서서 활약하였다. 동년 5월 그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락을 갖고, 군자금 모집을 위한 공채(公債)를 비롯하여, 독립신문, 임시정부 공보(公報), 신한청년 등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인쇄물을 인수하여 배포하는 한편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로 보냈다.
그는 또한 김청풍(金淸風) 등과 협의하고 사리원(沙里院)과 서울에 각각 교통국(交通局)을 설치할 계획을 세우고, 그는 이기하(李起夏)와 같이 서울교통국 참사(參事)를 맡아 실행 책임을 지도록 하였다. 이렇게 활동하던 중 활동내용이 일경에게 탐지되어 동년 6월에 체포되었으며, 2년여의 재판 끝에 1921년 8월 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5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44년에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모종의 비밀공작을 계획하던 중 다시 용산헌병대에 체포되었으며, 서대문감옥에서 흑하(黑河)검사에 의해서 조사를 받다가 1945년 5월 3일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옥사 순국하였다. 이 사건의 내용은 일체 비밀에 부쳐져 자세한 전말을 확인할 길이 없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2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1066 1067 1069 1070 107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1017 1018 1019 1020 10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