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평남 대동(大同) 사람이다.
1936년 평양(平壤) 소재 기독교계 사립학교인 숭실상업학교(崇實商業學校)에 재학하던 중 일제의 한국인에 대한 차별대우를 체험하면서 점차 민족의식에 눈떠갔다.
그리하여 독립운동의 선구자가 되어 조국독립을 쟁취하고 공화정체(共和政體)를 수립할 것을 결의하고 동년 6월 13일 비밀결사 일맥회(一麥會)를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37년 10월 중순 평양시내의 목단대(牧丹台)에서 조국독립의 달성을 위하여 농민의 정신적 계몽과 경제적 갱생을 목적으로 조직된 열혈회(熱血會)에 가입하고, 임무로서 부여된 과실재배의 연구를 위해 1939년 4월 일본 동경의 일본대학(日本大學) 전문부 척식과 농업전공과에 유학하여 장차 농민도장(農民道場)을 개설하고 민족의식의 앙양과 실력향상으로서 일거에 독립을 쟁취할 것을 맹약하였다.
이를 실천하기 위한 자금조달방법으로 회비 적립을 추진하면서 활동하다가 1939년 11월 28일 동경에서 일경에게 붙잡혔다.
그는 1941년 11월 27일 동경지방재판소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그러나 그는 붙잡혀 심문중에 받은 고문의 여독으로 병을 얻어 1942년 7월 7일 24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4輯 305·308·309·311·685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3輯 305∼311·685面
- 判決文(1941. 11. 27 東京地方裁判所)
- 昭和特高彈壓史(明石博隆) 第7卷 41∼44·58∼60面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12卷 495·496面
- 隨城崔氏籍簿 10面
- 碑石(韓國國語學校 構內에 建立)
- 明治百年史叢書(金正明) 第3卷 731·732面
- 韓國獨立運動史(文一民) 420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3輯 1077·1209·1210·1273∼1276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