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경기도 양주(楊州) 출신으로 1910년 윤인순의진(尹仁淳義陣)에 참여하여 포천
일원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윤인순은 경기도 양주 출신으로 1907년 군대해산 이후 의병을 일으켜 독자적
인 의병부대를 편성하여 파주(坡州)·적성(積城)·포천(抱川) 등지에서 활동하였
다. 그는 1907년 말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의 서울진공작전 실패 이
후 허위가 의병진을 재편성할 때 합류하여 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08년 6월 허
위가 체포된 뒤 윤인순은 30~40명의 소규모 의병진을 이끌고 파주·적성·양주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계속하였다. 1909년 윤인순은 이은찬(李殷瓚)·정용대(鄭
用大)·강기동(姜基東)·연기우(延基羽) 등과 연합부대를 편성하고 양주·파주·
포천·영평·연천·삭령·금천·백천·연안을 연결하는 육상과 해상, 그리고 도
서지방 등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3월 17일 양주 북방 4리에서 삭령수비대와
전투 중 부하 19명과 함께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어봉선은 1909년 음력 2월경부터 1910년 5월 25일까지 윤인순·강기동·전성
서(田聖瑞) 등이 이끄는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1910년 음력 2월 총검
을 휴대한 의병 20여 명과 함께 경기도 포천군 산내면(山內面) 산내리(山內里)
에서 면장 윤모(尹某)로부터 군자금 90원을 모집하였고, 곧이어 내동리(內洞里)
에서 이장 신모(辛某)로부터 의복 10점을 수집하였다.
어봉선은 소위 강도죄(强盜罪)로 기소되어 1910년 7월 18일 경성지방재판소에
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皇城新聞(1910. 6. 10)·楊州郡誌(楊州文化院, 1992) 下, 917면
- 判決文(京城地方裁判所:1910. 7. 18)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162~16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