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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10953
성명
한자 洪基兆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1962 훈격 대통령장
33인 중 1인으로 징역 2년형을 받고 1938년 7월 6일 서거(逝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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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권(1986년 발간)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평안남도 용강(龍岡) 출신이며, 천도교(天道敎)인이다. 홍경래(洪景來)의 후손으로, 어려서 한학과 필법을 배웠고, 1886년(고종 23) 동학에 들어가 황해도와 평안도의 수접주(首接主)·대접주(大接主)·창의대령(倡義大領)등을 역임하고 동학혁명에 가담했다. 1910년 이후에는 많은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여 국외의 독립단체에 제공했으며, 가산을 탕진하면서까지 조국광복에 심혈을 기울였다. 점차 조국광복의 기운이 고조되고 있던 1919년 2월 25일 천도교의 기도회 종료보고와 국장에 배관키 위해 상경했다가, 손병희(孫秉熙)·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 등의 천도교측 간부들과 만나 독립운동에 관한 계획을 듣고, 이에 찬성하여 민족대표로서 서명키로 하였다. 27일 재동(齋洞) 김상규(金相奎)의 집에서 오세창·최 린(崔麟)·임예환(林禮煥)·권병덕(權秉悳)·나인협(羅仁協)·김완규(金完圭)·나용환(羅龍煥)·홍병기(洪秉箕)·박준승(朴準承)·양한묵(梁漢默) 등의 동지와 다시 만나, 최남선(崔南善)이 작성한 독립선언서와 기타 문서의 초안을 검토하고, 그 자리에서 민족대표로서 서명 날인 하였다. 28일 밤에는 재동 손병희의 집에서 다른 민족대표들과 회합하여 다음날 거행될 독립선언에 따른 제반준비사항을 최종 협의하였다. 3월 1일 오후 2시 인사동(仁寺洞)의 태화관(泰華館)에 손병희 등과 민족대표로 참석하여 독립선언서를 회람하고 만세삼창을 외친 뒤, 일본경찰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1920년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고향에 돌아가 천도교의 도사(道師)·장로(長老)를 지내면서 청소년에게 민족정신을 고취시켰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고등경찰요사 17·22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681·682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12면
  • 무장독립운동비사 2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8권 614·66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91·117·268·355·403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103·147·148·174·488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05면
  • 조선독립운동년감 2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307·309·818·821-82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1·14·20·21·28·38·41-50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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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홍기조 도호 : 유암(游菴) 평남 용강(龍岡) 3·1운동
본문
1865년 12월 16일 평남 용강군(龍岡郡) 오신면(吾新面) 하양리(霞陽里) 749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천도교인으로 도호는 유암(游菴)이다. 어려서 용강군의 노옥림(盧玉琳) 등으로부터 한학과 붓글씨를 배웠다. 1893년경 황해도 강령(康翎)의 김유영(金裕永)을 통하여 동학을 알게 된 후, 1894년 10월 정식으로 입교하였다. 1896년 11월 홍기억(洪基億) · 임복언(林復彦)과 함께 강원도에 가서 이종훈의 중개로 최시형(崔時亨)과 손병희(孫秉熙)를 만난 후 돌아와 포교에 힘썼다. 그 결과 1896년 접주에 임명된 후 수접주(首接主)를 거쳐 1900년 평안도 대접주에 임명되었고, 1903년경 교호수 10,000호를 거느리는 창의대령(倡義大領)에 임명되었다. 1904년 손병희의 명을 받아 대동회(大同會) · 중립회(中立會) · 진보회(進步會)를 조직하고 동학의 근대화운동을 추진한 끝에 1905년 12월, 동학을 근대적인 종교인 천도교로 탈바꿈하는 데 참여하였다. 1906년 12월 평양대교구장에 임명되었고, 1909년 예비도훈(豫備道訓), 1910년 신도사(信道師)에 임명되었다. 1910년대 평양대교구 대교구장과 천도교 도사로서 포교 확대와 교세 신장을 꾀하는 한편 교리강습소 등에서 교인의 교육을 통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민족운동의 역량을 확대하였다. 1919년 1월부터 손병희와 권동진(權東鎭) · 오세창(吳世昌) · 최린(崔麟)의 주도로 독립만세운동이 추진되자, 1919년 2월 말 천도교의 기도회 종료 보고와 국장에 참배한다는 명목으로 서울에 올라왔다. 2월 25일 전동(典洞)에서 권동진 · 오세창으로부터 3·1운동의 구체적인 계획과 “손병희 선생의 발기로 조선의 국권회복을 계획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할 것을 준비 중이니 그대도 동지로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대한제국이 일제에 병합되어 식민통치를 받는 것에 비분강개하고, 나라의 자주 · 독립을 갈망하였던 그는 기꺼이 동참하였다. 2월 27일 손병희 · 최린 · 오세창 · 권병덕 · 나인협 · 김완규 · 나용환 · 홍병기 · 박준승 · 양한묵 등의 천도교인들과 재동 김상규(金相奎)의 집에서 최남선(崔南善)이 작성한 독립선언서와 기타 서류의 초안을 검토하고 그 자리에서 민족대표로 서명하고 날인(捺印)하였다. 그의 참여는 단순히 개인의 참여가 아닌 평안남도와 황해도 등지의 관할교인 수만 명의 참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3월 1일 오후 2시경 민족대표 28인과 함께 태화관 별 6호실에서 모여 한용운(韓龍雲)의 독립선언서 낭독 후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하였고, 곧 민족대표와 함께 일제관헌에게 체포되어 본정경찰서(本町警察署, 지금의 중부경찰서)에 연행되어 혹독한 조사와 심문을 받았다. 이후 1년 반 남짓 지속된 재판기간 동안 서대문형무소에서 심한 옥고를 치렀으나, 재판관에게 “조선인으로서 3·1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조선의 독립을 위하여 이 일에 참여하였다”며 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1920년 10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미결구류일수 360일 본형산입)을 받고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1년 11월 6일 출옥한 후 교회 활동에 전념하였다. 1922년 현기관(玄機觀) 임시관장과 강원도 종법사(宗法師), 신도사(信道師) 등에 임명되어 잠시 중앙총부에서 활동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평남으로 돌아가 진남포종리원 주임종리사, 화성포(化成包) 포덕사 등으로 활동하며 포교 활동을 벌였다. 또한 학교와 강습소를 통하여 교인들의 문화적 소양을 증진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고령으로 수년간 병을 앓다가 1938년 7월 6일 74세로 서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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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출판법위반, 보안법위반 피고 등에 대한 본건을 관할위로한다(담당할수없음) 경성지방법원 1919-08-01 국가기록원
2 판결문 내란 경성지방법원을 본건의 관할재판소로 지정 고등법원 1920-03-22 국가기록원
3 판결문 보안법위반, 출판법위반, 소요 본건 공소를 수리하지 않음 경성지방법원 1920-08-09 국가기록원
4 판결문 보안법위반, 출판법위반, 소요 징역 2년(원판결 취소), 공소불수리(公訴不受理) 신청은 각하(却下)함, 미결구류일수 360일 본형에 산입 경성복심법원 1920-10-30 국가기록원
5 인물카드 보안법범 - - - 국사편찬위원회
6 인물카드 보안법위범 징역2년 경성복심법원 1920-10-30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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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3·1독립선언 기념탑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2 기타 봉황각 서울특별시 강북구
3 비석 황극단 전라북도 전주시
4 3·1독립운동 기념탑 서울특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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