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일본 도쿄에서 양산제조업에 종사하던 그는 1939년 11월 경부터 5명의 동지와 함께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조선문제시국연구회(朝鮮問題時局硏究會)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1941년 8월까지 8회에 걸쳐 회합을 갖고 진천순모(鎭川淳模), 태원용(太原勇), 방산상봉(方山祥鳳), 봉곡태을(蜂谷台乙), 결성시백(結城時伯), 전윤필(全允弼) 등을 가입시켜 중일전쟁 및 통제경제에 관한 시국담을 논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그런데 이 일이 발각되면서 체포되어 1942년 3월 5일 청진재판소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대전형무소에 이감된 후 1944년 10월 26일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高等法院 刑事部, 1944. 3.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