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기도 장단(長湍) 사람이다.
일찍이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있던 그는 1920년 유돈상(柳敦相) 등과 함께 중국 즙안현(輯安縣)에서 독립단(0獨立團)을 조직하고 서기로서 이도세자(二道歲子) 일대에서 활동하던 중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6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이 흩어진 것은 진정한 나라 위한 교육이 없는 까닭이니 참으로 인재 양성이 급하다고 여겨 유돈상, 음성진 등과 더불어 학교를 설립하여 항일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그후 국민부(國民府)와 조선혁명당, 조선혁명군이 결성되자 이와 연계하여 지원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1932년 국민부의 영릉총관(永陵總管)을 맡아 국민부 지방조직의 확장을 위해 노력하였다.
1934년 조선혁명군의 양세봉(梁世奉) 총사령이 순국한 후에는 박대호(朴大浩) 등과 함께 붕괴위기에 처한 조선혁명군의 재건에도 힘썼다. 그는 표면상 만주국 능가선민회장(陵街鮮民會長)으로 겉으로는 일제의 정책에 호응하는 척하면서 암암리에 조선혁명군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활동이 일본 밀정에 의해 발각, 체포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한 후 일본영사관을 경유, 무순감옥에 수감되었고 이곳에서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現代史資料(姜德相) 第28卷 35·36面
- 半島人匪團兵團에 投合(新賓縣 縣誌辦公室 所藏 敵僞資料) 甲種 第5類 第21卷 40-43面
- 審問記錄 第2回(新賓縣 人民法院, 1952)
- 同仇敵愾(曹文奇, 撫順市社會科學院, 1998) 302面
- 畏堂先生三世錄(1983) 373·375·381面
- 興京縣 公署 公文(1935. 8. 31)
- 新賓縣 人民檢察署公訴書(檢字 第77號 195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