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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60481
성명
한자 金炯甲
이명 金炯才, 白吾筍烈, 金炯材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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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2018 훈격 애족장
1927년 10월 장진홍(張鎭弘) 등이 주도한 암살단(暗殺團)에 가입하며 서울, 대구(大邱) 등지에서 독립자금(獨立資金) 모집 방법(募集方法)에 대하여 논의하고 대구조선은행지점(大邱朝鮮銀行支店) 폭탄투척계획에 가담하다, 1928년 10월경(月頃) 체포된 후 면소(免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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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27년 1월경 경상남도 진주군(晉州郡)에서 이정기(李定基)가 파견한 이원기(李源祺)의 권유로 중외일보사(中外日報社) 진주지국장 조우제(趙佑濟)와 함께 ‘암살단’에 가입하였다. 이 조직은 장진홍(張鎭弘)이 1925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무기 등을 가지고 국내로 들어온 이정기와 만나서 결성한 비밀결사이다.

김형갑은 중국에서 들어온 조재만(曺再萬)을 비롯해 조우제 등 10여 명의 동지와 서울·대구 등지에서 회합하며, 독립운동자금의 모집 방법 등에 대해 논의하였다.

1927년 들어 암살단에서는 장진홍을 중심으로 일제 고관(高官) 암살과 중요시설물 파괴를 목적으로 폭탄을 제조하고, 먼저 대구에서 거사(巨事)를 추진하기로 하였다. 목표를 경상북도 도청과 도경찰부 건물 그리고 조선은행 및 식산은행(殖産銀行) 대구지점의 네 곳으로 정하였다. 장진홍은 이미 1926년부터 다방면으로 폭탄 제작을 추진하여 경상북도 칠곡(漆谷)과 선산(善山) 경계에 위치한 봉화산(烽火山)에서 성능을 실험하기도 했다. 1927년 10월에 먼저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를 시도했다. 폭탄 3개를 폭발시켜 건물 유리창 수십 장을 파손하고 일본 경찰 5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으로 1927년 12월 6일경 동지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장진홍·이정기 등 다수의 동지는 도피했다가 1928년 10월 이후 체포된 것으로 보인다. 김형갑은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등의 죄목으로 기소되었다. 1929년 5월 6일 대구지방법원(大邱地方法院)의 판결로 보석(保釋) 출옥하였다. 12월 9일에야 예심(豫審)이 종결되어, 면소(免訴)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형사사건부(刑事事件簿)(1928)
  • 집행원부(執行原簿)(대구지방법원:1929. 5. 6)
  • 동아일보(東亞日報)(1929. 12. 28, 29)
  • 조선일보(朝鮮日報)(1929. 12. 28, 29, 30)
  • 매일신보(每日申報) (1929. 12. 29, 30)
  • 기려수필(騎驢隨筆)(국사편찬위원회) 352면
  • 항일투사열전(抗日鬪士烈傳)(추경화, 1997) 2권 189면
  • 부산일보(釜山日報)(1999. 6. 28)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형갑 김형재(金炯才, 金炯材), 김백오(金白吾) 경상남도 진주(晉州)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사건
본문
1902년 3월 27일 경상남도 진주군(晉州郡) 내동면(奈洞面) 유수리(柳樹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김형재(金炯才)·(金炯材)·김백오(金白吾)를 사용하였다. 1920년대 중반 비밀결사 암살단에 가입하여 항일투쟁에 나섰다.암살단은 1925년 9월 장진홍(張鎭弘)·이원록((李源祿), 이육사(李陸史))·이원기(李源祺) 등에 의해 조직된 단체로서, 일제의 주요 시설을 파괴할 목적으로 만들었다. 1927년 1월경 이원기의 권유로 진주에서 중외일보사(中外日報社) 지국장을 하고 있던 조우제(趙佑濟)와 함께 암살단에 가입하였다. 이후 서울·대구 등지에서 독립운동자금 모금 활동을 주로 하였다.1927년 암살단은 장진홍을 중심으로 대구의 주요 관공서, 은행, 부호 등에게 폭탄을 투척하는 방식의 암살 파괴공작을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준비에 착수하였다. 이들은 다이너마이트로 사제 폭탄을 제조하여 경상북도 도청·경상북도 경찰부·조선은행 대구지점·식산은행 대구지점 등 네 곳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결정하였다. 폭탄 제작은 맡은 장진홍은 10월경 투척용 폭탄 4개와 자살용 폭탄 1개를 제작하였다. 그리고 10월 18일 투척용 폭탄을 선물인 것처럼 포장해 나무상자에 넣은 후, 제일 먼저 조선은행 대구지점으로 보내 폭파를 시도하였다. 폭탄 3개가 폭발되어 건물 유리창이 파괴되었고, 은행원과 경찰 등이 중상을 입었다.이른바 ‘대구 폭탄 사건’으로 1927년 12월경 암살단 동지들과 함께 경찰에 붙잡혔다. 사건의 주도자 장진홍은 사건 발생 직후 도피하였다가 1928년 10월 이후 붙잡혔다.이 일로 폭발물취체벌칙 위반,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치안유지법 위반, 살인미수 및 협박 등으로 기소되었다. 1년 6월여 옥고를 치른 후 1929년 5월 6일 대구지방법원의 보석 결정으로 풀려났다. 같은 해 12월 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린 예심에서 면소 판결을 받았다.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내산재 경상남도 진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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