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제주(濟州) 사람이다.
1942년 7월경 일본 대판(大阪)의 흥국상업학교(興國商業學校) 야간학생으로 재학 중,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숙독하고 자신도 한민족을 위한 독립투사가 될 것을 맹세하였다. 이에 따라 동년 9월경 학우인 이영문(李永文)·강권우(康權佑) 등을 동지로 규합하고 이들과 함께 급우들에게 "인도(印度)의 독립운동은 인도인 학생들 손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듯이 조선독립운동의 중심은 우리 학생들 손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설파하는 등 민족의식 고취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동년 12월 중순 "우리들은 진정한 반도인(半島人)이며 개개인이 아닌 대국적인 견지에서 보아 근로계급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는 강권에 의하여 자유를 속박당하고 우리 민족은 더욱이 침략세력의 채찍질에 고통을 받는 피압박 형제들인 것입니다. (중략) 학교의 교육방침은 대개 간단 명확히 말해 본다면 훌륭한 일본인이며 천황(天皇)에게 총성하고 황운(皇運)을 받들어 모실 수 있다고 하는 것이 그 총의(總意)입니다. 우리들에게 반도를 위해 어떻게 하라는 문구는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들은 말하자면 일본을 위해 일본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지 반도를 위한 조선적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략) 우리들은 국어(國語)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권의 유지도 어렵습니다. 주권이 없는 민족의 고유 풍속, 언어의 구제사업은 희망이 없습니다."라는 원고를 작성·등사하여 친우들에게 전달하는 한편, 졸업기념 간담회에서 이를 낭독하여 일제의 식민지정책을 비판하고 민족의식을 계몽하려다 발각되어 동년 12월 27일 일경에 의해 붙잡혔다. 그 후 약 6개월 후인 1943년 5월 10일 검찰로 송치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소화특고탄압사(명석박융) 제8권 88·8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