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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242
성명
한자 康時儉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일본방면 포상년도 1995 훈격 대통령표창
1942. 7월 (頃) 일본(日本) 대판(大阪) 흥국상업학교(興國商業學校) 재학중 독립운동을 위한 투사가되고자 급우(級友)들에게 우리나라의 독립은 학생들의 손으로 이루어야 한다고 계몽하고 동 취지의 연설문 원고를 작성하여 급우들에게 배포하는 등 활동하다가 1942. 12. 27 피체(被逮)되어 옥고(獄苦)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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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제주(濟州) 사람이다.

1942년 7월경 일본 대판(大阪)의 흥국상업학교(興國商業學校) 야간학생으로 재학 중,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숙독하고 자신도 한민족을 위한 독립투사가 될 것을 맹세하였다. 이에 따라 동년 9월경 학우인 이영문(李永文)·강권우(康權佑) 등을 동지로 규합하고 이들과 함께 급우들에게 "인도(印度)의 독립운동은 인도인 학생들 손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듯이 조선독립운동의 중심은 우리 학생들 손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설파하는 등 민족의식 고취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동년 12월 중순 "우리들은 진정한 반도인(半島人)이며 개개인이 아닌 대국적인 견지에서 보아 근로계급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는 강권에 의하여 자유를 속박당하고 우리 민족은 더욱이 침략세력의 채찍질에 고통을 받는 피압박 형제들인 것입니다. (중략) 학교의 교육방침은 대개 간단 명확히 말해 본다면 훌륭한 일본인이며 천황(天皇)에게 총성하고 황운(皇運)을 받들어 모실 수 있다고 하는 것이 그 총의(總意)입니다. 우리들에게 반도를 위해 어떻게 하라는 문구는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들은 말하자면 일본을 위해 일본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지 반도를 위한 조선적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략) 우리들은 국어(國語)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권의 유지도 어렵습니다. 주권이 없는 민족의 고유 풍속, 언어의 구제사업은 희망이 없습니다."라는 원고를 작성·등사하여 친우들에게 전달하는 한편, 졸업기념 간담회에서 이를 낭독하여 일제의 식민지정책을 비판하고 민족의식을 계몽하려다 발각되어 동년 12월 27일 일경에 의해 붙잡혔다. 그 후 약 6개월 후인 1943년 5월 10일 검찰로 송치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소화특고탄압사(명석박융) 제8권 88·89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강시검 - 전라남도 제주(濟州) -
본문
1924년 4월 16일 전라남도 제주도 우면(右面) 법환리(法還里, 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법환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신천(信川)이며, 부친은 강성진(康性珍)이다. 어릴 적 일본 오사카(大阪)로 건너가 낮에는 선반공으로 노동을 하고 밤에는 고코쿠(興國) 상업학교 야간부에서 공부하였다. 1942년 7월경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읽고 조선 민족을 위한 투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학우인 이영문(李永文)·강권우(康權佑) 등을 동지로 규합하였다. 그리고 급우들에게 “인도의 독립운동은 인도인 학생들 손에 의해 이뤄지고 있듯이 조선 독립운동의 중심은 우리 학생들 손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민족의식을 계몽하는 활동을 펼쳤다. 1942년 12월에는 조선 민족이 처한 현실을 규탄하고 일제의 식민 지배를 비판하는 문건을 작성·등사하여 친우들에게 전달하였다. 이 문건에는 “우리들은 진정한 반도인(半島人)이며 개개인이 아닌 대국적인 견지에서 보아 근로계급입니다. 그런데도 한반도는 강권에 의하여 자유를 속박당하고 우리 민족은 더욱이 침략 세력의 채찍질에 고통을 받는 피압박 형제들”이라고 하여, 한국민이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는 실상을 말하였다. 특히, 이 글에서 일제의 교육 방침은 “좋은 일본인이 되라, 천황에게 충성하라, 황운(皇運)을 부익(扶翼)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전부이다. 우리에게 조선반도를 위해서 진력하라는 문구는 하나도 없다. 우리는 바꾸어 말하면 일본적 교육을 받는 것이지 조선적 교육을 받는 것은 아니다”라며 일제의 교육정책을 맹렬하게 비판하였다. 일제의 식민 지배를 비판하는 이 같은 글을 급우들에게 배포하였고, 졸업 기념 간담회에서도 이 글을 낭독함으로써 학생들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려 하였다. 그러나 1942년 12월 27일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어 체포되었으며, 1943년 5월 10일 검찰에 송치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내산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관련 현충시설 정보

도움말
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애국선열 추모탑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2 사당 창열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3 기념관 제주항일 기념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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