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전남 순천(順天) 사람이다.
광주고등보통학교 재학중 1929년 6월에 김상환(金相奐)·김보섭(金普燮) 등 광주고보생 20여명과 함께 무등산에서 회합하고 항일학생비밀결사인 광주고보독서회를 조직하였다.
동회는 광주지역의 중심적 항일학생 결사였던 성진회(醒進會)가 1927년 3월, 형식상 해체된 후 이를 계승하여 확대 개편된 「독서회중앙본부」의 하부조직으로 결성되었다.
동회의 운영은 회원을 5개조로 나누어 조별로 연구활동을 전개하였는데, 그는 김보섭과 함께 재정부위원의 일을 맡았다.
이렇게 독서회 활동을 통하여 항일민족정신을 고취하던 중, 1929년 11월 3일에 광주학생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참가하여 가두시위를 벌였다.
동월 11일에는 제2차 시위대 학생들에게 배포할 격문을 오쾌일(吳快一)·김홍남(金鴻南) 등과 함께 인쇄하였으며 거사 당일인 동월 12일에는 광주고보생 시위대열에 앞장서서 가두시위를 전개하였다.
그후 일경에 붙잡혀 소위 광주학생 독립만세시위 운동에 대하여는 1930년 5월 대구복심법원에서 금고 8월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광주고보에서는 퇴학을 당했으며, 독서회 운동 관계에 대해서는 다시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1931년 6월에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 1934년에는 전남노동협의회(全南勞動協議會) 재건운동을 벌이다가 또다시 붙잡혀 1934년 12월 2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260면
- 판결문(1930. 2. 26 광주지방법원)
- 판결문(1930. 5. 15 대구복심법원)
- 판결문(1931. 6. 13 대구복심법원)
- 판결문(1934. 12. 26 광주지방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494·499·553·555면
- 판결문(1930. 10. 18 광주지방법원)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3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240·246·247·250·251·264·266·1512∼1524·1633∼1654·1667∼170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