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1909년 안희제(安熙濟) 남형우(南亨祐) 서상일(徐相日) 이원식(李元植) 김동삼(金東三) 이시열(李時說) 박중화(朴重華) 배천택(裵天澤) 등 8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한 신민회(新民會) 계열의 비밀 청년단체인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창립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3 1운동 직후에는 부산에서 안희제가 설립한 백산상회(白山商會, 뒤에 백산무역주식회사(白山貿易株式會社)로 개편)의 지배인(支配人) 겸 취체역(取締役)이 되어 실질적으로 이 회사를 관리하였다. 이 회사는 단순한 무역회사가 아니라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고 국내와의 연락을 담당하는 연락기관이었다.
1919년 11월에는 애국청년들을 민족간부로 양성하기 위하여 안희제와 함께 기미육영회(己未育英會)를 조직하여 다수의 애국청년들을 인재로 양성하고 외국유학까지 시키었다. 기미육영회의 장학생 중에서는 다수의 독립운동가가 배출되었다.
1929년 10월 조선어연구회(朝鮮語硏究會:朝鮮語學會의 前身)가 조선어사전 편찬회(朝鮮語辭典編纂會)를 조직하자 이에 가입하여 적극적으로 사전 편찬사업에 참가했다. 1942년 10월에 일제가 한국민족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어 말살정책을 대대적으로 강행하고 한글학자와 한글운동가들을 투옥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조선어학회 사건(朝鮮語學會事件)으로 구속되어 함경남도 홍원경찰서와 함흥경찰서에서 잔혹한 고문과 악형을 받고, 1943년 9월 18일 기소유예로 석방되었으나 실질적으로 2년의 옥고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91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395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0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