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권(1986년 발간)
평안북도 선천(宣川)에서 태어났다.
1907년 4월 국권회복을 위한 비밀 결사로서 양기탁(梁起鐸) 안창호(安昌浩) 전덕기(全德基) 등을 중심으로 신민회(新民會)가 창립되자 이에 가입하여 평안북도 지회에서 활동하였다.
신민회의 무관학교(武官學校)설립과 독립군기지 창건운동을 저지하고 신민회를 해체시키기 위하여 일제가 「사내총독암살음모사건(寺內總督暗殺陰謀事件)」이란 것을 조작하여 신민회 회원 800여명을 전국에서 검거할 때에 주현측도 1911년 9월에 체포되어, 1912년 9월 1심재판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으며, 1913년의 7월의 2심재판에서 무죄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2년간 옥고를 치렀을 뿐 아니라 일제에게 잔혹한 고문을 받았다.
1919년 3 1운동 후에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평안북도 조사원(調査員)에 임명되고, 임시정부 재무부 참사(參事)와 대한적십자회(大韓赤十字會) 회원으로 활약했다. 상해의 대한청년독립단(大韓靑年獨立團)과 상해거류민단(上海居留民團)에도 가입하여 활동했다.
1922년에 상해 국민대표회기성회(國民代表會期成會)에 가입하여 안창호(安昌浩) 여운형(呂運亨) 등과 함께 임시정부의 개조와 국민대표대회의 개최를 주장했다. 안창호가 이끄는 흥사단(興士團)에 가입하여 1926년까지 상해에서 활동했다. 그 후 귀국하여 국내의 흥사단 운동에 진력하다가 1937년 6월 동우회(同友會) 사건으로 일제경찰에 체포되어 1941년 10월에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형의 선고를 받았으며 공소심에서는 무죄가 선고되었으나 실질적으로 2년 6개월의 옥고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조선민족운동연감 33 36 61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50면
- 매일신보 1913. 3. 21 23, 1941. 10. 3 4 7 8 9 10 18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328 354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2권 67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2권 501 82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67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903 90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760 762 766 767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74 211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433 471 844면
- 민족독립투쟁사사료(해외편) 34 3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304 47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2권 1284 1285 1286 1307 1314 1346 1351 1364 1367 139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