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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8646
성명
한자 姜達龍
이명 姜達永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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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1990 훈격 애족장
1919. 3. 18 진주(晋州) 만세 사건(萬歲事件) 주모자(主謀者)피체(被逮) 대구복심법원(大邱覆審法院)에서 3년형(年刑) 받고 복역(服役)타가 2년만인 1921. 3. 8에 석방(釋放)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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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경상남도 진주(晋州) 사람이다.

1919년 3월 18일 이강우(李康雨)·김재화(金在華)·권채근(權采根)·박진환(朴進煥)·박용근(朴龍根)·강상호(姜相鎬) 등과 함께 진주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3월 1일 서울에서의 독립만세운동 소식을 전해듣고, 진주에서도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심하고 같은 마을의 애국 청년들과 함께 구체적인 거사 방법을 논의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먼저 3월 10일경,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만들어 비밀리에 배부하면서 인근 각면의 유지와 민중을 규합해 갔다. 이때 그는 김재화·박진환과 함께 각 사회단체를 찾아다니며 독립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고하였다.

3월 18일 오후 1시경, 그는 시위군중과 함께 애국가를 제창하며 독립만세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이때 일본 헌병과 경찰이 소방대까지 동원하여 시위행렬을 저지, 해산시키기려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자 일본 군경은 주동 인물들에게 잉크를 뿌려 두었다가 그것을 증거로 하여 그날 저녁부터 체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때 체포되어 대구(大邱)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265·346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0권 93·100·10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4권 116면
  • 고등경찰요사 292·301·304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37면
  • 기려수필 358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74면
  • 동아일보(1921. 3. 11)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8권 103·204·577·738면
  • 판결문(1919. 6. 17 대구복심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267·289·337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강달룡 강달영(姜達永), 황산(黃山) 경상남도 진주(晋州) 3·1운동, 조선공산당 사건, 6·10만세운동
본문
1888년 5월 5일 경상남도 진주부(晋州府) 진주면(晋州面) 비봉동(飛鳳洞)에서 태어났다. 본명보다 강달영(姜達永)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황산(黃山)이라는 이명도 사용하였다. 어려서 한학을 수학하였고, 진주도립고등학교(晋州道立高等學校)를 졸업하였다. 장성해서는 대서업(代書業)에 종사하였으며, 『조선일보』 진주지국 기자로 활동하였다. 1919년에는 경남 진주 지역의 만세 시위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3월 1일 서울의 만세 시위 소식을 접한 후 진주에서도 독립 만세를 외치기로 결심하고 김재화(金在華)·권채근(權采根)·강상호(姜相鎬) 등 지역 청년들과 함께 날짜와 구체적인 거사 방법을 논의하였다. 3월 10일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만들어 비밀리에 배부하면서 인근 각 면의 유지와 민중을 규합해나갔다. 거사 일로 정한 3월 18일 3개 구역으로 나누어 봉기한 시위대를 선두에서 지휘하며 시내를 행진하였다. 출동한 경찰과 헌병들은 무력으로 저지하며 소방대까지 동원해 진압하였다. 이 시위의 주도자로 지목되어 체포되었다. 4월 22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 6월 17일 대구복심법원 판결에서 징역 3년 형을 받자 다시 고등법원에서 상고하였으나, 9월 6일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사면으로 감형되어 1921년 3월 6일 출옥하였다 출옥한 후에는 노동자와 농민, 백정 출신 등과 함께 대중운동에 참여하였다. 1921년부터 조선노동공제회에 참여하였으며, 1922년 7월에는 조선노동연맹회를 조직해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그 뒤 조선노동연맹회를 노농 단체의 연합조직으로 발전시키는 데 힘썼는데, 1924년 봄 조선노농총동맹을 발기하고 중앙집행위원에 선출되었다. 이러한 중앙에서의 활동을 고향 진주로까지 확대하였다. 1922년 2월 조선노동공제회 진주지부(후에 진주노동공제회로 개명)를 결성하였는데, 이는 1920년대 진주 지역 사회운동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1922년 9월 전국 최초로 소작노동자대회를 개최했으며, 1923년 5월에는 백정 출신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조직한 형평사(衡平社)에 참여하였다. 1924년 9월 삼남지방 노동·농민 단체 대표자가 모인 경남노동운동간친회를 주관하였다. 한편, 3·1운동으로 옥고를 겪은 후 출옥해서는 사회주의 사상에 기반한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들었다. 1922년 무산자동맹회에 가담하는 등 사회주의 사상 단체에서 활동하였고, 1923년 5월 김재봉(金在鳳)·김약수(金若水) 등 국내 공산주의 운동 지도부가 꼬르뷰로국내부를 조직하자 진주 지역 야체이카(사회주의 운동 세포 조직) 책임자가 되었다. 1925년 4월 창립한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에 가입하였는데, 그해 11월 ‘신의주 사건’으로 당 조직이 노출되면서 김재봉 등 간부들이 대거 검거되자 김재봉에 이어 조선공산당 책임비서가 되었다. 이후 국내 조직을 정비하고 만주와 일본 등지에 지부를 설치하는 등 당세 확장에 노력하였고, 국내 민족주의 세력과의 협력에도 힘써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세력을 연합한 민족 통일전선 운동을 전개하였다. 1926년 6월 10일 순종 장례식을 계기로 천도교 등 민족주의 세력과 함께 제2의 3·1운동을 일으키고자 계획하였다. 하지만 사전에 발각되면서 조선공산당 조직이 노출되었다. 이는 ‘제2차 조선공산당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검거는 6·10만세시위 이후까지 이어졌는데, 권오설(權五卨) 등 주요 간부와 당원들이 대대적으로 검거되면서 조선공산당은 거의 와해되었다. 이 일로 체포되어 1926년 7월 17일 종로경찰서로 연행되었다. 1928년 2월 1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6년 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와 대전형무소에서 복역한 후 1933년 9월 16일 출옥하였다. 7년 2개월 동안 수감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생긴 정신이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1940년 7월 12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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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보안법위반, 출판법위반 징역 3년(원판결 취소) 대구복심법원 1919-06-17 국가기록원
2 판결문 보안법위반, 출판법위반 상고 기각 고등법원형사부 1919-09-06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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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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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3·1독립운동 기념탑 서울특별시 중구
2 비석 3·1독립운동 기념비 경상남도 진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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