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충남 금산(錦山) 사람이다.
대구사범학교 재학중인 1940년 11월 23일에 동교생 박효준(朴孝濬)·강두안(姜斗安)·유흥수(柳興洙)·문홍의(文洪義) 등과 함께 당시 대구 봉산정(鳳山町) 소재 이태길(李泰吉)의 하숙집에 모여 항일결사 문예부(文藝部)를 조직하였다.
문예부는 민족의식을 앙양하고 단결을 도모하고 궁극적으로 독립에 목적을 둔 결사였다. 그러나 표면상으로는 문예활동을 표방하면서 매주 토요일 작품감상, 비판 등의 운동방침을 정하고 1940년 11월 30일부터 다음해 3월까지 약 9회의 모임을 갖고 민족문화를 연구하는 등 항일의식을 고양하였다.
그런데 동교 8회생의 졸업일이 다가오자, 이들은 각기 국민학교 교사로 부임하면 아동 및 학부형에게 민족의식을 고양하기로 하고, 그 활동상황을 월1회 보고하기로 하였다.
1941년 3월에 동교를 졸업한 그는 충남 논산군 소재 노성공립국민학교에 근무하면서 위와 같은 문예부의 사업을 수행하였다. 또한 그는 동년 3월에 문예부의 기관지 〈학생〉이 발간될 때 편집제작에 참가하였으며 출판비의 일부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런데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 윤독회의 간행물인 〈반딧불〉이 일경의 손에 들어가게 됨에 따라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그도 일경에 붙잡혔으며 그후 2년여 동안 미결수의 상태로 혹독한 고문을 당하다가 1943년 6월에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예심종결결정(1943. 2. 8 대전지방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77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800·802·80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