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경북 울진(蔚珍) 사람이다.
1934년 사립울진제동학교(私立蔚珍濟東學校)를 졸업하고 그후 잡화점점원·면포조합(綿布組合)·하우차마차조합(荷牛車馬車組合) 서기 등으로 근무하였다.
1939년 10월 1일 그는 임시헌(林時憲)·남원수(南源壽)·노하순(盧夏淳)·주진욱(朱鎭煜)·남정성(南情性)·전만수(田萬秀)·전원강(田元江)·남복이(南福伊) 등과 만나 독립운동을 펴기로 뜻을 모으고 1939년 10월 28일 남복이의 집에서 회합하여 창유계(暢幽稧)를 조직하였다.
창유계는 일제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하여 계모임을 가장하여 소규모의 조직으로 운영되었다.
그들은 결성 이후 1942년 5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회합을 가지면서 내부조직의 결속강화, 반일선전 활동에 주력하며 시의적절한 독립운동방향을 모색하였다.
그는 창유계의 계원으로 참여한 외에 1941년 12월 6일 준향계(準香 )에도 참여하였다. 준향계는 1938년 12월 6일 임시헌(林時憲)·남원수(南源壽)·전찬문(田燦文)·장세전(張世銓)·최효대(崔孝大) 등 울진 지역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항일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조직된 비밀결사인데 창유계와 조직규모·이념·활동방략이 유사하였다. 그러나 1943년 3월 일경에 창유계와 준향계가 발각되어 와해되었는데 그도 그때 붙잡혀 가혹한 고문으로 예심중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44. 7. 21 대구지방법원)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7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