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1901년 평양 예수교 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으며 1902년에 선천으로 이주하여 1906년 미국 선교사와 선천 신성중학교(信聖中學校)를 설립하여 육영사업에 힘썼다. 1920년 9월 1일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 결사대원(決死隊員) 박치의(朴治毅)의 선천경찰서(宣川警察署) 폭탄사건에 관련되었는데 이는 광복군 소속 이진무(李振武)가 신의주역 호텔에 폭탄을 던졌고, 또 독립군 3명이 선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만주로 도피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김석창을 비롯, 선천의 유지들이 다수 붙잡혔으며 그는 1921년 4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8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 1928년 평북 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을 역임하는 등 교무에 몸바치다가 광복이 되자 선천군 인민위원회 위원으로 있었으며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의 선천 수복을 환영하다가 국군의 후퇴에 이어 인민군에 의해 총살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217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0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2권 442·44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7권 33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23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180∼182·640∼65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