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신원범은 1932년 6월 전남 영암군 덕진면(德津面) 영보리(永保里) 영보정(永保亭) 일대에서 김판권(金判權), 최판옥(崔判玉) 등의 지도하에 동료 70여 명과 함께 소작권 이전의 부당함과 일제의 지주 옹호를 규탄하는 시위를 전개하였다.
김판권은 일찍이 동경에 있으면서 1920년대 초부터 신사상에 심취하였고, 1931년 7월 고향인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로 돌아온 뒤로는 최판옥, 곽명수 등과 교유하면서 신사상의 연구와 운동방침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들은 1932년 5월 1일의 메이데이 기념일에 경계가 엄중하여 이를 기념하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여겨 같은 해 6월 4일이 음력 5월 1일에 해당하므로 이날을 메이데이 기념일로 시위운동을 하고 농민층을 규합할 것을 계획하였다.
신원범은 이에 동조하여 운암리(雲岩里), 백계리(栢溪里) 방면에서 소작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을 규탄하며 큰 북을 울리고 나팔을 불며 노동가를 크게 외치며 대오를 지어 산을 내려와 운암리 방면을 향해 시위행진하였다. 이로 인해 체포된 신원범은 소위 가택침입,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32. 6. 17)
- 判決文(光州地方法院 木浦支廳:1933. 9. 29)
- 豫審終結決定書(光州地方法院 木浦支廳:1933.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