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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7366
성명
한자 韓興三
이명 裵粱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1993 훈격 애족장
1909. 2. 10((陰)) 전북 태인군에서 정성현 의진(鄭成玄義陣)입진(入陣)하여 30여명의 의병(義兵)과 함께 총기(銃器) 20여정과 칼 1자루로 무장(武裝)하고, 전북 김제군(金堤郡) 일대에서 의병(義兵) 활동(活動)을 하다가 피체(被逮)되어 징역 3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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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전북 정읍(井邑) 사람이다.

1894년 1월, 20세 청년으로 고부에서 일어난 동학운동에 참여하여 전주를 거쳐 삼례까지 진출하였으나 일군에게 패하자, 귀향하지 못하고 피신하였다.

이후 1905년 을사조약이 늑결되자 1906년 음력 4월 무성서원에서 기병한 최익현, 임병찬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정읍, 순창 등에서 활약한 바 있다. 최익현, 임병찬 의병부대의 해산 후 다시 기회를 엿보고 있던 그는 임실 출신의 의병장 정성현(鄭成玄)이 부하 30여명과 함께 총 20정, 칼 1자루를 휴대하고 항일활동을 한다는 사정을 전해 듣고 가산을 팔아 총기, 병기 등을 다수 구입하여 1909년 2월 10일, 정성현 의진에 가담하였다.

이 부대에서 양운경·김윤오·김낙필·김기만·이홍길 등과 함께 전북 김제군의 각 촌리를 전전하며 항일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는 전투를 계속 수행하면서 김제군의 부호들에게 군자금을 모집하고 의병을 모으던 중, 1909년 8월 중순에 일경에 붙잡혀 같은 해 9월 13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른 후 혹독한 고문으로 출옥 즉시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09. 9. 13. 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665面

수형기록

도움말
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강도 징역 3년 광주지방재판소전주지부 1909-09-13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묘지 안장자 위치정보 시스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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