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1928년 9월 1일 정의부(正義府) 제2중대장으로서 요녕성(遼寧省) 토성자(土城子)에 살고 있는 일본의 밀정 최상진(崔相振)을 처단하였다. 그가 활동한 정의부는 1924년 11월 25일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등 8개 단체대표 25명이 참가한 가운데 길림(吉林)에서 조직되었다. 정의부는 조직되자 곧 헌장과 선언을 발표하고 아울러 중앙행정위원으로 이탁·오동진(吳東振)·현정경(玄正卿)·김이대(金履大)·윤덕보(尹德甫)·김용대(金容大)·이진산(李震山)·김형식(金衡植)·이청천(李靑天) 등을 선임하여 조직을 완료하였다.
또한 정의부를 끌고 나갈 분과위원도 선임하였는데, 자치분과위원 이진산·맹철호(孟喆鎬)·최명수(崔明洙), 군사분과위원 이장녕(李章寧)·조성환(曺成煥)·김철(金鐵), 교육분과위원 이창범(李昌範)·고활신(高豁信)·김동삼(金東三), 재정분과위원 김호(金虎)·윤덕보·승진(承震), 생계분과위원 박정조(朴正祚)·김정제(金定濟)·백남준(白南俊) 등이었다. 아울러 부령(府令)으로 명칭공포식, 창립기념일, 기원연호(紀元年號), 공농제도(公農制度), 행정위원회 규칙, 칭호법, 기관보 및 교과서 발간, 행정위원회 결의사항 등을 공포하였다.
이윤환이 활동하던 정의부는 중앙본부를 처음에는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 두고 참의부(參議府)의 세력권인 관전현(寬甸縣)·집안현(輯安縣)·환인현(桓仁縣)·통화현(通化縣) 등 4개 현의 일부를 제외한 지역에 10개의 지방총관소(地方總管所)를 설치하였다. 정의부는 이후 본부를 유하현 삼원보에서 화전(樺甸), 길림의 신안둔(新安屯), 반석(盤石) 등으로 옮기면서 1926년 말경에는 17개 지방총관소를 설치하고 봉천성(奉天省)에 살고 있는 한인 1만 7천여 호, 8만 7천 명을 관할하였다.
정의부는 1924년 조직이후부터 1925년 말까지는 자치활동에, 1926년 초 군민대표회의가 조직되어 무장파가 득세하였을 때는 군사활동을, 1926년 말 다시 민정(民政)으로 이양되었을 때부터 1929년 3월 해체될 때까지는 자치활동에 좀더 비중을 두었다.
한편 이윤환은 1929년에는 국민부(國民府)의 정당인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1930년 8월에 개최된 조선혁명당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제3중대장으로 피선되었다. 당시 1중대장은 김보안(金輔安), 2중대장은 양세봉(梁世奉), 제4중대장은 김문거(金文擧), 제5중대장은 이종락(李鍾洛) 등이었다.
이윤환은 1930년대 봉황성(鳳皇城)에 근거를 두고, 평북 삭주(朔州)와 의주(義州) 방면의 일제기관을 습격하는 등 조선혁명군 간부로 활동하다가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8권 901면
- 조선일보(1935. 9. 5, 9. 19)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5권 594·64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7권 51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