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전북 고창(高敞) 사람이다.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체결되자 1906년 최익현(崔益鉉)이 전북 정읍군(井邑郡) 태인면(泰仁面)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거의(擧義)할 때 부친을 따라 연소한 몸으로 입진하였다.
1908년 2월 박도경(朴道京) 의병장이 남포(藍浦)에서 기병(起兵)하자 입진하여 왜군과 싸워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1919년 3월 1일에는 전북 고창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벌이다가 일경에 붙잡혀 30일간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1919년 중국 상해(上海)의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에서 국내의 독립운동에 대한 감독과 군자금 모집등을 위하여 전주지방에 전북독립운동감독부(全北獨立運動監督府)를 설치하고 감독 노진룡(魯鎭龍), 부감독(副監督) 오의균(吳毅均) 등을 임명할 때 고문(顧問)으로 추대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朝鮮民族運動年鑑 45面
- 敬通(全北興德鄕校, 1958. 2月)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7輯 1183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