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상주(尙州)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상주군 화북면 입석리(化北面 立石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장암리(壯岩里)에서 구장(區長) 이성범(李聖範)을 중심으로 김재갑(金在甲)·홍종흠(洪鍾欽)과 함께 4명이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전국 각지의 의거에 호응하여 이곳에서도 거사를 단행할 것을 협의한 후 4월 14일 리(里)내 각처에 독립만세운동 권고문을 보내고 태극기를 만드는 등 준비를 서둘러 갔다.
그는 4월 8일 속리산 문장대(俗離山 文藏臺)로 올라가서 백여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높이 꽂고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상주의 일헌병에게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5월 15일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照會回報書
- 高等警察要史(慶北警察部) 34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454·455面
- 3·1運動實錄(李龍洛) 768·769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