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1906년 5월 11일에 민종식(閔宗植)의 홍주의진(洪州義陣)에 가담하여 선봉장 박영두(朴永斗)와 함께 소모장에 임명되었다. 그후 유격장 이한구(李漢龜)와 같이 임천(林川)·한산(韓山) 등지의 의병을 모집하고자 임천(林川)에 도착하였다가 붙잡혀 동년 11월 23일 평리원(平理院)에서 소위 "정사(政事)를 변경할 목적으로 난을 일으키는 율(律)"로 유배 10년을 선고받았다.
그 뒤 1906년부터 1923년까지 서천군(舒川郡) 한산면(韓山面) 송림리(松林里)에서 은거생활을 하면서 1919년에는 손병희(孫秉熙)가 주도하는 3·1독립운동에도 참여하였으며, 일경의 이목을 피해 부안군(扶安郡) 위도면(蝟島面) 진리(鎭里)에서 은거하였으나 생활고로 인하여 7년간의 걸식생활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별집 1권 33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