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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50673
성명
한자 李世遠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년도 1995 훈격 애족장
협성실업학교(協成實業學校) 1학년 재학중이던 1930. 1. 15 광주학생운동(光州學生運動)에 동조하여 동교생(同校生) 정윤희(鄭允熙), 박재열(朴在烈) 등과 협의하여 1월 16일 오전 9시 30분 경부터 ‘학원의 독립’ ‘만세 피압박 민족’의 문구가 적혀 있는 깃발을 앞세우고 학생들을 이끌고 익선동(益善洞)을 지나 창덕궁(昌德宮)을 거쳐 봉익동(鳳翼洞)에 이르기까지 행진하며 시위를 전개하다가 피체(被逮)되어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獄苦)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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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충남 예산(禮山) 사람이다.

1929년 서울 협성실업학교(協成實業學校) 3학년에 재학 중, 동년 11월 광주학생운동으로 다수의 한국 학생들이 일경에 붙잡히는 등 탄압을 받게 되자, 이것을 일제의 민족차별정책으로 규정하고, 각지의 학생들과 동맹휴교 및 시위운동을 전개하여 일제의 탄압에 대항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1930년 1월 16일 정윤희(鄭允熙)·박재열(朴在烈) 등과 협의하여 약 1백여 명의 학생들을 규합하여 두 부대로 나누어 '학원의 독립', '만세, 피압박민족' 등의 문구를 적은 기(旗)를 각각 선두에 들고 교문을 나서 종로와 파고다공원,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익선동(益善洞)을 지나 창덕궁을 거쳐 봉익동(鳳翼洞)으로 각각 만세시위 행진을 주도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1930년 7월 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형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달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0월이 확정되어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1930. 1. 17, 2. 17, 2. 23, 7. 3)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3집 282·1539·1540면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국사편찬위원회) 별집 제6집 229면
  • 조선일보(1930. 7. 3)

수형기록

도움말
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보안법위반 징역 10월 미결구류일수 중 110일 본형에 산입 경성복심법원 1930-07-24 국가기록원
2 인물카드 보안법위반 징역10월 경성복심법원 - 국사편찬위원회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묘지 안장자 위치정보 시스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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