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2학년에 재학 중 식민지교육의 철폐를 요구하며 전개된 동맹휴교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28년 6월 광주공립고등보통학교(光州公立高等普通學校) 5학년의 이경채(李景采)가 항일(抗日) ‘선언서’를 배포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학교는 19일 형도 확정되지 않은 그를 퇴학시켰다. 학생들은 대표단을 꾸렸다. 대표들은 학교에 퇴학사유를 요구했다. 학교는 학생 대표들에게 즉시 근신 처분을 내렸다.
이강후 등은 6월 26일 진정서를 제출하고 동맹휴교에 돌입했다. 학생들은 일본 식민지교육 철폐를 요구하며 동맹휴교를 벌였다. 주도 학생들은 동맹휴교 지도본부를 결성하고 참모부, 통신부, 외교부, 회계부를 설치하여 투쟁을 조직화했다.
이강후는 동맹휴교 학생들의 결속에 힘썼다. 30일 허진환(許振煥) 등 학우들과 함께 교사를 만나러 간 2학년생을 제지하며 구타 응징하였다. 이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는 빌미가 되었다. 1928년 8월 13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건 위반’과 ‘상해’ 등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학교는 그를 퇴학시켰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東亞日報)(1928. 6. 29, 7. 6, 7. 18, 7. 21, 8. 5, 8. 16, 8. 24)
- 한국민족해방운동사자료집(김경일, 1993) 제10권 339, 34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