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신일선은 1932년 5월 1일 메이데이를 기하여 최판옥(崔判玉)·김판권(金判權) 등의 주도로 기획된 소작권 이동 반대 시위운동에 참여하였다. 5월 1일 당일은 일본 경찰의 경계가 심하므로 실제 시위운동은 음력 5월 1일인 6월 4일에 진행하기로 계획되었다. 이들은 당일 영보정(永保亭) 뒷산에서 덕진면 내 영보리·운암리(雲岩里)·노송리(老松里)·장암리(場岩里) 등의 청년회원 약 70명과 함께 운암리·백계리(栢溪里) 방면의 소작권 이동 방지를 위해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그리고 선두에 적기(赤旗)를 세우고 북을 치고 나팔을 불고 노동가(勞動歌)를 부르며 운암리 방면으로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도중에 차례로 신 소작인의 집으로 몰려가 그 행위를 질타하기도 했다.
이 ‘영암농민 데모사건’으로 10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영암경찰서(靈巖警察署)에 체포되었다. 1933년 6월 22일 예심이 종결되어, 같은 해 9월 29일 불구속 피고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목포지청(木浦支廳)에서 이른바 ‘가택침입·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6월(미결구류 180일 산입)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예심종결결정서(豫審終結決定書)(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1933. 6. 22)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1933. 9. 29)
- 집행원부(執行原簿)
- 동아일보(東亞日報)(1932. 6. 14, 1933. 6. 13, 6. 17, 6. 24, 7. 6~10, 7. 23, 7. 28, 8. 1, 9. 15, 9. 17, 9. 25, 10. 1)
-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1933. 9. 16, 9. 24, 10. 8)
- 사상월보(思想月報)(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4) 제4권 1호 13~23면
- 영암군향토지(靈巖郡鄕土誌)(영암군향토지편찬위원회, 1972) 63~6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