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8권(1990년 발간)
광주(光州) 사람이다.
1919년 2월 7일부터 8일 사이에 전남 광주군(光州郡) 송정면(松汀面) 선암리(仙岩里)의 박경주9朴京柱) 집에서 김용규(金容奎) 등과 함께 2·8독립선언문 1,500매, 독립가 500매를 각각 인쇄하는 등 독립만세시위를 준비하고, 1919년 3월 8일 광주군(光州郡) 양림리(楊林里) 남궁 혁(南宮赫)의 집에서 김복현(金福鉉) 등과 함께 광주시민의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여 선언문을 준비함과 동시에 광주학생을 동원시키는 책임을 맡아 동년 3월 10일에서 3월 13일까지 광주시민 수천명을 규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붙잡혀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9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19. 9. 15 대구복심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