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성주(星州)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월항면 대산리(月恒面 大山里)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전국 각지의 만세운동 실황을 신문을 통해 알고 또한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직접 보고 들어온 동지 이기원(李基元)의 말을 듣고 송인집(宋寅輯)과 군내 양반을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개시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는 1919년 4월 2일 특히 송씨문중(宋氏門中)의 유생을 포섭하여 성주읍내 장날에 모이는 장꾼 및 경산동(京山洞) 관제묘(關帝廟)에 모인 기독교측과 합세하여 전개된 독립만세시위를 주동하였다.
또한 경북지방의 이름난 유학자 곽종석(郭鍾錫)을 비롯한 장석영(張錫英)·송준필(宋浚弼)·김창숙(金昌淑)·송규선(宋圭善) 등이 주창하여 양반 유생을 중심으로 파리강화회의(巴里講和會議)에 조국독립 승인에 관한 장서를 보내기로 하고 청원서에 서명한 139명 중 한사람으로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5월 2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으나 8월 2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 뒤 1926년에는 중국 상해(上海)에 망명한 김창숙(金昌淑)의 지령을 받고 입국한 송영호(宋永祜)를 도와 비밀리에 군자금 모금활동을 벌이다가 일경에 붙잡혀 3개월간 수감되었다가 석방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1919. 5. 20 大邱地方法院)
- 判決文(1919. 8. 23 大邱覆審法院)
- 高等警察要史(慶北警察部) 36·247·248·252面
- 翁金昌淑一代記(心山事業會) 95面
- 朝鮮儒敎獨立運動 巴里長書略史 1∼6面
- 獨立運動實錄(慶北版) 296·297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465∼468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8卷 936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