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충청남도 홍성(洪城) 사람이다.
홍성군(洪城郡) 부평리(富平里)에서 사는 민영갑(閔泳甲)과 함께 금마면(金馬面) 가산리(佳山里)의 독립만세시위 거사를 의논하고 당시 가산리 이원문(李元文)의 집에서 가설극장이 설치되어 연극이 공연되고 있었으므로 민영갑·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 등 동지와 함께 공연기회를 이용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1일 오후 8시경 이원문의 집에서 연극이 공연되던 중, 그는 동지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여 연극공연을 구경하러 왔던 수십명의 관객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하다가 결국 체포되었다. 그는 이해 7월 3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133·13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182·1183·1184면